찬양 인도자는 자부심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섬기는 예배의 인원이 많든 적든 그건 하나도 상관 없습니다. 그렇기에 그 누가 뭐라 하든 전혀 흔들리지 않습니다. 인도자 본인 스스로가 이걸 인식하고 있느냐 아니냐의 차이는 참 크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군대에 있을 때 회중 석에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찬양 인도를 해 본적이 있습니다. 금요 예배였는데 그날 따라 신우회원들이 휴가나 근무 등의 이유로 예배에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회중석에는 오직 목사님 한 분만 앉아 계셨고, 저는 찬양 인도를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속상했습니다. 그러나 그 속상함은 다른 신우회원들이 예배에 나오지 않아서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찬양한다는 데서 오는 부끄러움은 아니었습니다. 회중석에 사람은 없었지만 오히려 평소보다 더 많은 천사들이 찬양 시간을 돕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그 시간 가운데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 날의 찬양을 통해 저는 정말 은혜 받았습니다.
지금은 그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갖춰진 환경에서 찬양 인도를 섬기고 있습니다. 베테랑 밴드마스터, 저마다 노련한 풀 밴드 구성원들, 내노라 하는 싱어들이 저와 함께 합니다. 무대 조명은 물론 음향 시스템도 상당한 수준입니다. 모두가 어디 내놓아도 자랑스럽습니다. 어떤 때는 이 모든 구성원들 중에서 저의 달란트가 가장 작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당연히 함께 찬양하는 회중도 군대에 있을 때와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무색할 정도로 엄청나게 많습니다. 당연히, 매 순간 찬양할 때마다 정말 떨립니다. 긴장 때문에 심호흡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온 몸에 힘이 빡 들어갑니다.
그러나 군대에서 아무도 없을 때 찬양 인도할 때와, 지금 너무나도 감사한 환경에서 찬양할 때, 그때와 지금이나 저의 마음가짐은 동일합니다. 왜냐, 하나님은 그 때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찬양 중에 임하시거든요. 저는 찬양 시간의 총 책임자로서, 하나님께 우리의 찬양을 상달 시킬 의무가 있고, 하나님께서 그 시간 베풀어 주시는 은혜를 함께 나눌 책임과 권리가 있습니다. 제 손에 하늘 나라의 열쇠가 쥐여저 있는 것이지요. 제가 열리라 하면 열릴 것이라는 믿음으로 찬양을 인도합니다. 하나님이 저를 세우셨기에 하나님이 함께 하실 거라는 것을 저는 의심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은, 그들이 어떤 죄악을 저질러도 마침내 돌이키기만 한다면, 결코 그 곁을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께서는, 저에게도 마찬가지로 찬양의 장소로 인도하여 내셨으니, 저와 늘 함께 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담대함은 있지만 어깨는 무겁습니다. 마음에 중압감도 있습니다. 찬양 시간의 선봉대장인 찬양 인도자가 길을 잃는다면, 뒤따르는 회중들도 갈팡질팡 하기 마련이니까요. 제가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찬양 시간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찬양 시간이 정말 성공적이라면, 누가 뭐래도 찬양 인도자가 하나님께 칭찬을 들어도 한 마디는 더 들을 것입니다. 그 시간의 책임자니까요. 반대로 찬양 시간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쉬웠다면 질책을 들어도 찬양 인도자가 더 들을 것입니다. 역시 책임자니까요. 이 직분에 대해 정말 막대한 상급을 소망하며 섬기지만, 동시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하는 마음도 소망의 크기만큼 갖게 됩니다.
선곡 배경 및 주제 설명
하나님은 전쟁에 능하신 분, 승리의 주님이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만 한다면 어떤 신도, 세상의 어떤 권세도 우리를 두렵게 할 수 없습니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 사람들도 하나님이 승리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잘 알았지요. 그래서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자꾸 지니까 급기야 성궤를 전투에 가지고 나가는 선택을 합니다. 아마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만 한다면 반드시 승리할 거라는 생각이었겠지요. 결과는 영 좋지 않았지만요. 그 생각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고 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데 뭐가 두려워? 라고 이야기는 하지만 솔직히 두려울 때가 많지요. 당장에 하나님은 눈에 안 보이는데 내 앞에 당면한 문제들은 정말 잘 보이거든요. 때문에 우리는 종종 인식의 재발견이 필요한 듯 합니다. 영적인 눈으로 나의 상황을 보려고 때때로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찬양은 바로 그러한 담대함을 되찾고자 선곡했습니다.
믿음 따라 A
우리가 담대할 수 있는 까닭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함께 하시려면 우리에게 믿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군대가 날 에워싸도 겁 없네 … 주님 날 위하시면 누가 날 대적하리’처럼 승리를 선포하자는 마음으로 선곡했습니다.
송폼
I AAB AB I CCCC AA Ox8
A) 믿음 따라 걸음마다
말씀 따라 주님만 따르리
믿음 따라 걸음마다
말씀 따라 주님만 따르리
B) 나의 가는 길 믿음 따라 갈 때
군대가 날 에워싸도 겁 없네
또 내 입술의 기도 믿음의 선포
주님 날 위하시면 누가 날 대적하리
C) 믿음이 모든 것을 이기네
믿음이 모든 것을 이기네
너 결코 A
우리 담대함의 원천은 자기 암시가 아닙니다. 엄연히 하나님의 약속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즉, 내가 아무리 스스로 '나 용기 있어!'하고 외쳐도, 하나님이 '너는 나를 의지함으로 담대하여라’고 하지 않으시면 소용 없다는 겁니다. 첫 번째 찬양으로 우리 가운데 용기가 있음을 선포했다면, 이번 찬양을 통해서는 그 용기의 근원이 하나님 되심을 선언했으면 합니다.
송폼
I AAB A I B AAAA
A) 너 결코 용기 잃지 말아라
주가 너와 함께 하시리니
너 결코 용기 잃지 말아라
주가 너와 함께 하시리니
B) 너는 결코 작지 않도다
너를 위해 이루신 주님의 능력을 보라
너는 이제 약하지 않도다
네 안에 계신 주님이 세상보다 크시니
주님여 이 손을 F
우리가 용기를 잃을 때가 참 많습니다. 자꾸 눈에 보이는 것만 보려 하거든요. 이 때에는 스스로 잘난 체, 겁 없는 체 하지 말고, 적어도 하나님 앞에서만큼은 우리의 진실한 모습으로 담대함을 구했으면 합니다. '하나님 저는 이렇게 연약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의지함으로 세상을 능히 이길 능력과 담대함을 얻고 싶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를 인도하시고 내 기도에 응답해 주세요.'라는 고백 말입니다.
송폼
I 1절1절 2절 1후2후 O
1절) 주님여 이 손을 꼭 잡고 가소서
약하고 피곤한 이 몸을
폭풍우 흑암 속 헤치사 빛으로
손잡고 날 인도하소서
2절) 인생이 힘들고 고난이 겹칠 때
주님여 날 도와주소서
외치는 이 소리 귀 기울이시사
손잡고 날 인도하소서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F
앞선 찬양을 통해 하나님께 내 손을 잡아 달라고 고백했다면, 이번 찬양을 통해서 다시 한 번 그 내용을 되새깁니다. 더 나아가 예수께서 인도하여 주신다는 것을 선포하는 데까지 이릅니다. 나는 심히 고단하고 영혼 매우 갈할지 몰라도, 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시는 주님을 의지하겠다고 찬양합니다.
송폼
1절 2절 3절 2후 3후
1절)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내 주 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2절)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어려운 일 당할 때도
족한 은혜 주시네
나는 심히 고단하고
영혼 매우 갈하나
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시네
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시네
3절)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그의 사랑 어찌 큰지
말로 할 수 없도다
성령 감화 받은 영혼
하늘나라 갈 때에
영영 부를 나의 찬송
예수 인도하셨네
영영 부를 나의 찬송
예수 인도하셨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