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인해 위축되었던 극장가가 기지개를 켜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다시는 한국에서 천만 영화가 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라고 했지만 최근 <범죄도시 2>가 천만 관객을 돌파했지요. 아직 관객들은 재미있는 영화만 있다면 극장에 방문할 의사가 충분한 것 같습니다.
더욱이 요즘에는 극장 뿐 아니라 각종 OTT를 통해서도 영화 관람의 기회가 다양하게 주어지는데요, 선택의 폭이 넓어진 만큼 '이 영화가 재미있을까' 하는 고민이 많아지게 됩니다. 재미없는 영화는 시간도 아깝고 돈도 아깝게 되니까요.
오늘은 영화 홍보 마케터에 몸담았던 제가 '영화를 걸러 내는' 방법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사실 어떤 한 영화를 가지고 '재미있다' 또는 '재미없다'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취향은 사람마다 다르니까요. 그렇기에 오늘 소개해 드리는 방법은 방법론적인 내용이 되겠습니다.
아래 원칙과 유의할 사항들을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영화를 기깔나게 잘 골라내는 스스로를 발견하리라 기대합니다.
1. 영화는 예쁘게 포장되어 있는 '상품'임을 잊지 말라.
영화의 포장지를 맹목적으로 신뢰하면 안 됩니다. 영화는 '상품'입니다. 그래서 관계자들은 영화를 '팔려고' 노력합니다. 무수한 경쟁작들 사이에서 자신이 판매하는 영화가 돋보이도록 다양한 방법을 시도합니다. 경쟁작들이 얼마나 많냐고요?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2021년 개봉한 영화가 1934편입니다. 매주 30편이 넘는 영화가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기억하는 영화는 그 중 경쟁에서 살아남은 친구인 겁니다.
영화가 상품임을 잊지 않는다면 영화를 고를 때의 시각이 조금은 달라지게 됩니다. 마치 우리가 각종 광고들을 무조건적으로 신뢰하지는 않는 것처럼, 영화의 포스터와 예고편 등을 조금은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게 되는 것이죠. 광고를 위해서는 심의를 받아야 하기에 거짓말을 하지는 않습니다만, 표현을 달리 해서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거나, 관객들이 싫어할만한 요소들은 굳이 보여주지 않는 식으로 포장하는 작업이 이루어집니다.
2. 세상에 무조건 믿고 봐도 되는 배우는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화를 고르는 주요한 기준으로 캐스팅을 꼽습니다. 그러나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입니다. 유명한 배우가 나온다고 해서, 여러분이 좋아하는 배우가 출연한다고 해서 꼭 그 영화가 기대대로 흘러간다는 보장이 있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기존의 고착화된 이미지에서 탈피하고자 연기 변신을 시도하는 배우들의 경우가 있습니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주인공 다니엘 래드클리프는 해리 포터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고자 다양한 연기 변신 시도를 했습니다. <프리즌 이스케이프>, <건즈 아킴보>, <정글> 등에서 다소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줬지만, 이 중 여러분이 본 영화가 있나요? 연기 변신은 필연적으로 리스크를 동반할 수밖에 없으며, 투자자는 일반적으로 리스크를 회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면 해당 배우는 조금 더 예산이 작은 영화에 출연하게 되고, 그러면 익히 알던 배우의 모습도 아닐 뿐더러 그 배우의 전작에 비해서는 완성도가 떨어지는 영화를 여러분이 만나게 되는 겁니다.
또 이런 사례도 있습니다. 국내 영화의 경우, 어떤 배우는 드라마에서는 좋은 시청률을 보장하지만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을 때 흥행력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블록버스터 영화의 주연보다는 규모가 좀 더 작은 영화의 주연으로 출연하게 되기도 합니다. 이 때에는 연기력이야 출중할 수 있겠지만 여러분이 기대하는 그런 느낌의 영화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은 인지해야 하겠습니다.
반대로, 믿고 봐도 되는 사례가 있습니다. 최근 <탑건: 매버릭>으로 호평 받고 있는 톰 크루즈나, <범죄도시 2>로 다시금 엄청난 성공을 거둔 마동석 배우 같이 배우 자체가 하나의 장르가 된 스타일이죠. 이 배우들은 자신이 어떤 역할을 맡았을 때 가장 빛나는지 잘 알고 있고, 관객들이 자신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뻔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바꿔 말하자면 '아는 맛'이기에 신뢰도가 높아지게 되는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익히 아는 배우가 나온다고 해서 무조건 적으로 영화를 보러 가지 마시고, 그 배우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출연했는지 잠깐이라도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3. 포스터와 예고편 속 이런 문구는 조심하라.
조금 실전적인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포스터와 예고편 속에는 영화의 장점을 부각시키기 위한 다양한 문구들이 들어가게 되는데요, 그 속에 교묘하게 숨겨진 의도를 파헤쳐 보겠습니다.
1) OOO 제작진
조심해야 하는 문구입니다. 극단적으로 어떤 사례도 봤냐면, 로케이션 매니저 단 한 명이 겹친다는 이유로 'OOO 제작진 '이라는 문구를 넣어서 홍보하는 영화도 있습니다. 단 한 명만 겹쳐도 거짓말은 아니니까 심의는 통과 되거든요. 원래는 특수 효과 팀이나 프로듀서 등 영화의 완성도에 주요한 영향을 끼치는 제작진이 고스란히 투입되었다는 의미에서 쓰인 홍보 문구인데, 이러한 오남용으로 인해 최근에는 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됩니다.
단, 제작진 말고 감독 이름을 내건 영화는 의미가 다르긴 합니다.
2) OOO 어워드 노미네이트 / OOO 상 수상
권위 있는 영화제 수상 또는 후보에 올랐다는 사실이 영화의 재미를 보장해 주지는 않습니다. 더욱이 오스카(=아카데미), 골든 글로브 등의 주요한 수상 사실이 아니라면요. 또한 부문 역시 무척 중요한 요소입니다. 주로 예술 영화들이 이런 홍보 문구를 많이 내세우는데, 이 내용에 혹할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완성도가 높더라도 대중적인 재미가 떨어지는 영화는 무수히 많으니까요.
3) 로튼 토마토 OO%, "내 인생 최고의 영화!" - Variety 등 외국 평
외화의 경우 외국에서 먼저 개봉했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홍보 문구에 '로튼 토마토' 점수라든지 해외 매체들의 호평을 싣기도 합니다. 일단 로튼 토마토 점수라는 건 한 영화에 대해 해외 매체 및 평론가들이 매긴 점수를 %로 단순 환산한 결과입니다. 영화 전문 기자와 평론가의 시각이 꼭 대중과 부합한다고 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더욱이 문화와 정서가 다르기에 해외에서 잘 통한다고 해서 우리나라 관객들의 입맛에 맞는다는 보장은 없는 겁니다.
게다가 해당 로튼 토마토 점수는 최고점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평가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점수는 올라가거나 내려갈 수 있는데요, 심의 특성상 어느 한 시점의 점수임을 증빙하기만 하면 되기에 주로 고점을 홍보 포인트로 활용하게 됩니다.
해외 매체들의 다양한 평들을 싣기도 합니다만, 이건 번역의 문제여서 살짝 뉘앙스를 바꾸기도 하고, 아주 일부만 발췌하여 사용하기도 하기 때문에 온전히 신뢰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이처럼 '이 영화가 해외에서 고평가를 받고 있다'고 홍보하는 영화는, 판매자가 어느 정도 영화의 퀄리티에 자신감이 있는 경우가 많기에 눈길이 가신다면 조금 더 알아 보는 것도 추천 드립니다.
4. 장르도 당신을 낚을 수 있다.
영화에 대한 정보를 접하다 보면, 홍보 문구에서 각종 장르명을 접할 수 있는데요, 이 역시 어느 정도 걸러 들으시는 게 좋습니다. 흔히들 영화의 장르라고 하면 공포, 스릴러, 코미디, 드라마 등입니다. 그리고 관객들은 선호하는 장르들이 있기 마련이죠. 그래서 영화라는 상품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이 장르에서부터 가공 작업을 시작합니다.
<버즈 라이트이어>는 '스페이스 액션 어드벤처', <탑건: 매버릭>은 '항공 액션 블록버스터', <토르: 러브 앤 썬더>는 '코스믹 엔터테이닝 블록버스터'로 장르를 홍보하고 있네요.
장르명에 대해 조심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실제 영화의 장르와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홍보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실제 영화 속에는 액션 씬이 별로 없지만, 관객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굳이 장르명에 액션이라는 문구를 넣는다든지 하거든요. 그런 영화를 보고 나면 '속았다'라는 기분이 드는 겁니다. 그러므로 영화의 장르 역시 무작정 믿지 말고 의심을 한 번 해 보는 게 좋습니다.
5. 영화는 생각보다 제작사, 배급사 정보가 중요하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제작사와 배급사에 대해 잘 모르고 영화를 보러 갑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제작 및 배급사 정보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들이 영화에 돈을 투자하고 영화를 통해 돈을 벌어 들이는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돈이 얽혀 있기 때문에 이들의 결정은 하나하나 다 '투자한 돈을 회수할 수 있는지'에 대해 포커스가 맞춰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점에 대해 각각이 다 노하우가 있고 잘 하는 분야들이 다릅니다.
A24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더 라이트하우스>, <미드소마>, <유전>, <문라이트> 등 예술 영화를 제작하는 회사입니다. 상도 꽤 많이 받았고, 대체적으로 완성도가 높습니다. 그래서 예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A24의 영화라면 좀 더 관심을 가지기도 합니다.
또한 흔히 '직배사'라고 불리는 배급사들이 있습니다. 영화계의 대기업? 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외화의 경우, 영화의 판권을 수입해 와서 판매하는 '수입사'가 있는가 하면, 영화의 권리를 가진 회사가 직접 한국에 들어와 배급하는 형태도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 '직배사'라고 합니다. 디즈니, 워너브라더스, 유니버셜 픽쳐스 등이 대표적인 직배사입니다. 직배사 영화의 특징은 상대적으로 고예산이며, 대중적입니다.
반대로 '수입사'의 영화들은 직배사 영화들에 비해 들어가는 예산도 적고, 개성이 다양한 만큼 호불호가 갈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어떤 제작사인지, 배급사인지 정보를 아는 게 영화 선택에 조금 더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참, 포스터나 예고편 잘 보시면 이 정보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6. 외화는 외국에서 먼저 개봉하는 경우가 많다. 해외 평과 정보를 찾아보자.
중소 규모 외화의 경우, 해외에서 먼저 개봉하는 일이 꽤 많습니다. 그러면 해외 관객들이 해당 영화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 정보를 사전에 알 수 있지요. 많이 찾아 볼 필요는 없고, 로튼 토마토, 메타 크리틱, IMDb 점수 및 평들을 참고해 보시면 됩니다.
이걸 확인해 보는 작업이 왜 중요하냐면, 국가와 문화가 다르다 보니 국내 마케팅 전략이 달라지는 일들이 잦기 때문입니다. 한국인 입맛에 맞게 좀 더 가공하는 거죠. 포스터도 달라지고, 예고편도 아예 다른 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해외 정보 및 평들을 보다 보면 영화의 민낯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됩니다. 아무래도 관객의 입장에서 좀 더 정확히 판단할 수 있게 됩니다.
7. 개봉 이후 실관람객의 반응을 살펴 본다. (가장 확실한 방법)
이게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개봉 첫날 영화관에 달려가지 말고, 하루나 이틀 정도 뒤에 실관람객 평들을 확인해 보는 겁니다. 물론 개봉 전 언론 배급 시사회 등을 통해 먼저 관람한 평론가와 영화 기자들의 리뷰가 앞서 나오지만, 아무래도 일반 관객들과 보는 시각이 다르다 보니 참고 정도만 할 법 합니다. 제일 좋은 건 영화에 대한 대체적인 평가들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조금 들여다 보는 겁니다.
위 일곱 가지 기준들이 앞으로 영화를 고를 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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