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속 나

(교회에서) 남겨진 자

야너도행복할수있어 2023. 8. 7.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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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친구 요즘 안 보이네?” / “다른 교회로 나가고 있어”

신앙생활의 경력(?)이 길어질수록 여럿 가슴 아픈 일들이 많아진다. 그 중 하나는 영원히 함께 동역할 줄 알았던 영혼들이 하나 둘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도 그나마 신앙에서 완전히 떠나는 건 아니고, 이런 저런 이유로 우리 교회를 떠나 다른 교회로 출석하게 되어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이별은 이별이기에 씁쓸하다.

남겨진 자들은 외롭다

학창 시절, 정말 뜨겁게 교회에서 봉사하고 신앙생활했던 나의 친구들은 이제 단 한 명 남았다. 그 많던 동역자들은 다 어디로 가고 이제 그 한 명만이 나의 곁을 지켜 주고 있다. 떠나간 이들은 작당하고 우르르 가버리지 않았다. 가랑비에 옷 젖듯,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 보면 한 명이 사라져 있고, 또 찾아 보면 없어져 있고 이런 식이었다. 그렇게 차츰 차츰 누군가는 세상으로 누군가는 다른 교회로 자리를 옮겼다.

떠나간 이들은 나름대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남겨진 나는 종종 외롭다. 그들은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이들과 만나 새로운 추억을 쌓고 있겠지만, 나는 똑같은 공간에서 가끔 그들을 어쩔 수 없이 떠올리며 쓸쓸함을 느낀다. ‘이 곳에서 예전에는 그렇게 즐겁게 놀았는데’, ‘여기서 그렇게 함께 뜨겁게 기도했는데’ 같은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세월이 지나며 풍파에 바위가 깎여 나가듯, '우리’라는 존재도 한 명 한 명 깎여지며 결국에는 나 혼자 남게 되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외롭다고 해서 나도 떠나야 한다는 그런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외로운 건 외로운 거고, 해야 할 일은 해야 할 일이다. 외롭다는 감상은 할 수 있지만, 그 감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건 안 된다. 외로움을 삭히고 우리 교회에서 나는 나의 직분을 잘 감당해야 하리라.

남는 데에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떠나간, 그리고 떠나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이유가 참 다양하다. 교역자와의 갈등, 다른 누군가가 시험에 들게 해서, 가고자 하는 교회의 방향성 또는 체계가 마음에 들어서 등.

그런데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대개 그만한 이유가 없는 듯 하다. 그저 지난 주에도 이 곳에 출석했기 때문에 또 나오는 식의 사람들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어느 새 정신을 차려 보면 나도 그럴 때가 많다.

관성에 따라 ‘여전히’ 같은 교회에 계속 나오는 사람들의 약점이 무얼까. '떠날 이유’에 솔깃해진다는 거다. 굳이 남아 있을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그럴 사명감이 없기 때문에 떠날 이유에 대해 스멀스멀 생각하게 될 때에 거기에 취약해지고 마음을 두게 된다.

떠나간 사람들 모두가 그렇다는 게 아니다. 적어도 떠나갈 이유와 남을 이유 두 가지를 비교할 거리를 만들어 보자는 거다. 떠날 이유 하나만으로 휘리릭 떠나지 말고, 남을 이유와 떠날 이유 어느 것이 더 스스로에게 비중이 높은지를 저울에 달아 보자는 거다. 그걸 하고와 하지 않고의 차이는 꽤 크지 않을까.

내가 이 교회에 여전히 남아 있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 곳에서 내가 받은 은혜에 대해 깊이 묵상해 보자. 하나님이 나를 이 곳에 보내신 이유에 대해 기도로 응답을 구해 보자. 아무 생각 없이 운명에 맡겨 살지 말고, 목표와 이유가 있는 신앙생활을 하자.

그렇게 스스로 결심하며, 남겨진 자로의 소임을 다하려 애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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