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이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1,000만원이 생긴다면 어디에 쓰고 싶어?”
조건이 있습니다. 모든 재테크 제외, 누군가에게 선물 제외입니다. 오로지 나를 위해 소비하는 용도로 써야만 한다는 겁니다. 저를 빼고 다른 사람들은 하고 싶은 것들이 즉각 즉각 튀어 나왔습니다. 어찌나 하고 싶은 게 다들 많은지요. 토트넘 축구 직관, 성형수술, 하와이 여행… 참 종류도 다양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자리에서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못했습니다.
하고 싶은 게 떠오르지 않았거든요. 저를 위해서 돈을 쓰려면, 하고 싶은 게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데, 그게 막 딱 생각나는 게 없었습니다. ‘요새 뭐가 재미있었지?’ 해도 최근에 뭐 때문에 즐거웠다 하는 게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많은 직장인들이 그렇겠지만 제 생활 패턴은 참 단조롭습니다. 회사-집만 왔다 갔다 하며 삽니다. 주중에는 약속도 없습니다. 주말에는 만나봤자 거의 가족입니다. 사실 교회 가면 일요일 하루는 거의 사라지죠. 그러니까 저는, 회사에 있거나, 아니면 가족과 함께 있거나 무조건 둘 중 하나의 상태로 일상을 보내고 있는 겁니다.
참 바람직한 아빠의 모습이네요. 저 스스로도 자랑스럽습니다. 그런데 조금 생각해 보니, 이게 과연 저 개인을 위해서도 좋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당연하게도 저는 가족들이 기뻐한다면 제가 희생해도 좋습니다. 제가 조금 고생하고 힘들긴 해도 그 이상으로 가족들이 행복해 한다면 그게 바로 제가 추구하는 행복이거든요. 그러나, 할 수만 있다면, 저도 나름대로 개인적으로 행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예전에 직장을 은퇴하신 가장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잘 공감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무엇보다 같이 할 사람이 없어 하릴없이 무력하게 집에서 TV만 보신다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자존감도 낮아지고 여러모로 부정적인 에너지가 가득해진다고 합니다.
지금은 조금 이해가 갑니다. 제가 지금 지내는 이대로 몇 년만 더 살다 보면 그렇게 무력해지는 시기가 오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를 위한 삶을 적어도 한 가닥은 남겨 놓아야 하겠다는 결심이 섭니다.
왜 저라는 사람은 이렇게 욕구가 결여된 삶을 살아 가고 있는 걸까요.
예전을 돌이켜 보면, 저는 하고 싶은 게 참 많은 아이였습니다. 성우도 되고 싶었고, 과학도 재미있었고, 뭔가를 그리는 일도, 글을 쓰는 일도 참 즐거웠습니다. 이런 것도 하고 싶고 저런 것도 하고 싶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삶을 살아가며 저 스스로 제 욕구들을 가지치기 해 온 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하나씩 타협하고 합리화 해 가면서, 아무렇게나 뻗어 나가는 아름드리 나무가 아니라, 정갈하게 정돈된 분재가 되리라 마음 속에 그리며 살고 있진 않은가 돌이켜 봅니다.
이런 고민을 하는 걸 보니, 그래도 아직 제 마음 한 켠에는 욕구라는 녀석이 완전히 죽지 않고 조금은 꿈틀대고 있는가 봅니다. 그가 하는 이야기도 이제는 조금 귀 기울여 들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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