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화홍보마케팅 대행업체에서 2년 8개월간 직장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전혀 다른 직군으로 이직했다. 처음 영화홍보마케터가 되고자 할 때는 막연한 환상과 기대감이 있었다. 흔히들 '덕업일치'라고 하지 않는가. 중고등학교부터 영화 보는 걸 워낙에 좋아했다. 상업 영화와 예술 영화를 가리지 않고 다 좋아하고 즐겨 보던 나에게는 취미 활동 비슷한 걸 하면서 커리어도 쌓고 돈도 벌 수 있다니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여차저차 해서 (어떻게 여자처자 했는지는 나중에 자세히 공유하려고 한다.) 외화 상업 영화를 주로 마케팅하는 오프라인 영화홍보마케팅 대행업체에 입사하게 됐다.
비록 메이저한 한국 영화나 직배사(디즈니, 워너브라더스 등) 영화를 다룰 기회는 없었지만 그래도 간혹 규모가 있는 영화들의 마케팅을 진행하긴 했다. 카피도 써 보고, 예고편 구성도 직접 해 보고, 꿈 꾸던 것들은 대부분 다 해 봤다. 그러나 나는 이 직장을 퇴사하면서 다시는 영화홍보마케터로의 복귀는 물론, 영화 업계로의 복귀를 꿈도 꾸지 않기로 결심했다.
1. 낮은 연봉
영화홍보마케터는 필연적으로 연봉이 낮을 수밖에 없다. '낮다, 낮다' 하는 소리를 많이 듣긴 했지만 정말 적어도 너무 적었다. 최저시급보다 조금 더 받았는데 일반적인 중소기업 중에서도 거의 가장 적은 수준의 급여였고, 당연히 포괄임금제였다. 이렇게 영화홍보마케터의 급여 수준이 낮은 이유는 영화 수입·배급 피라미드의 가장 아래에 있기 때문인데, 자세히 설명하면 이야기가 조금 길어지고, 쉽게 말해 '대행업체' 즉 아웃소싱 인력이라서다. 특별한 노하우나 성과가 없다면 그 다음 순위 경쟁력은 대행료인데, 이게 생각보다 영화홍보마케팅 대행업체가 많은데다가 을의 입장이니 오랜 시간 동안 동결 수준이다. 낮은 급여 수준은 바로 다음으로 이어지는 혹독한 업무량 그리고 야근 등과 이어지면서 퇴사 욕구를 자극하게 된다.
2. 무한 야근과 주말 출근, 개인의 삶이 사라짐
영화라는 제품의 특성상, 주요 소비가 일반적인 업무시간 외(평일 저녁, 주말 등)에 이루어진다. 시사회, GV 등이 다 그 때 일정이 잡힐 수밖에 없다. 그러면 꼼짝 못하고 영화홍보마케터는 그 시간에 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수당이나 대휴를 잘 쳐주냐 그렇지도 않다. 설령 그렇게 보장이 된다고 해도 무지막지한 업무량에 치어 쉬고 싶을 때 쉬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비단 시사회 때문에만 야근을 하는 건 아니다. 업무량 자체가 물리적으로 많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영화홍보마케팅 대행료가 적기 때문에 마케팅 대행업체들은 최소한의 인원으로 업무를 꾸려가게 된다. 자연스럽게 1인당 소화해내야 하는 업무의 양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보도메일링 쳐내고, 프로모션 협의하고 등등의 당장 눈앞에 닥친 업무들을 쳐내다 보면 그냥 하루가 사라진다. 그런데 마케팅이라는 건 아이디어도 중요한데, 이건 시간이 주어져야 나오지 않겠는가. 또 아이디어를 짜내다 보면 퇴근 시간을 훌쩍 넘기게 된다. 가뜩이나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가 업무 시간이어서 기본적인 퇴근 시간도 늦는데, 조금만 야근하다보면 평일 저녁 약속은 꿈도 못 꿀 지경이 된다.
더욱 문제는 영화홍보마케팅, 그리고 영화 업계에서는 이렇게 개인의 삶이 없는 게 당연하게 여겨진다는 거다. 적어도 내가 만난 사람들은 다 그랬다.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늦게까지 남아서 책임감 있게 완수하는 게 맞다. 그렇지만 그걸 개선할 수 있다면 고쳐 나가야 하건만, 어느 누구도 그런 노력은 하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걸 '영화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라고 말하는데, 나는 거기에 동의하기는 어려웠다.
3. 휴가 계획은 불가능, 휴가 중에도 계속해서 오는 연락
업무 외적인 스트레스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휴가 계획을 세울 수도 없고, 세워도 전날에 어그러지고 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영화라는 상품의 특성상, 개봉일이라는 특정 시점에 가장 높은 판매량을 보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판매량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그래서 영화홍보마케팅은 개봉 시기에 맞춰 고객들의 인지도와 선호도가 최고 수준을 달성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쉽게 말해 개봉 직전이 매우 중요한 만큼 엄청나게 바쁘다는 거다.
조금의 책임감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회사가 가장 바쁜 시기에 휴가 가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 역시도 그랬다. 그러나 문제는 회사가 바쁜 시기를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갑자기 어떤 이벤트가 추가되거나, 갑자기 행사가 잡히거나 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이건 불과 2주 전에라도 알 수 없는 거다. 당연히 휴가 계획을 미리 세우거나 그런 건 전혀 불가능하다. 심지어는 수입사의 요청 때문에 이벤트 일정이 바뀌면서 휴가 전날 저녁 퇴근길에 휴가를 반납해야 하는 일도 있었다. 아무래도 가장 을의 위치에 있다보니, 갑이 일정을 바꿔버리면 어쩔 수 없이 따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어찌 저찌 해서 휴가를 갔다고 치자. 그래도 업무 연락이 계속 온다. 내가 휴가 중인지 아니면 외부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 건지 헷갈릴 정도다. 프로모션 제휴 업체에서 연락 오는 건 이해한다. 그들은 내가 휴가 중이라는 사실을 모르니까. 그런데 자꾸 회사에서 연락이 오면 그 때는 짜증이 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심지어 뭐 간단한 걸 물어보는 것도 아니고, 시간을 제법 잡아먹는 업무까지 요구할 때도 꽤 많았다. 내가 가족과 여행 중인데도 말이다. 이렇듯 일과 삶이 분리되지 않는 직장생활은 나를 점차 고갈시켜 갔다.
4. 마케터는 생각보다 힘이 없다
영화홍보마케터를 꿈꾸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맨 처음에 영화의 컨셉을 멋지게 딱 잡고, 기발한 카피를 뽑아내며, 이색 이벤트로 대중들의 관심을 사로잡아 흥행에 성공하는 장면을 가슴 속에 품지 않을까. 그러나 현실은 조금 다르다. 영화홍보마케팅 대행사는 어디까지나 '대행사'다.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긴 하지만 외부인이라는 거다. 홍보와 마케팅에 사용되는 비용은 수입사와 배급사가 부담하고, 책임도 그들이 진다. 당연히 책임을 지는 사람이 최종 결정권을 갖는다. 그래서 영화홍보마케팅 대행사는 대부분의 경우에 자신의 아이디어나 의견을 고집하지 않는다. 만약에 흥행에 실패한다면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쨌든 영화홍보마케팅 대행사는 그 다음, 그 다다음 영화의 계약을 재차 따내는 게 목적이기에 수입사와 배급사 실무진의 입맛에 맞출 수밖에 없다. 수입사나 배급사 직원이 영화홍보마케터를 팍팍 밀어주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대개는 제안자의 역할에 그치는 게 현실이다.
첫 직장에서 2년 8개월간 재직하며 많은 사람들이 내 옆자리를 스쳐 지나갔다. 반 년을 견딘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모두 나를 신기하게 생각했다. 어떻게 이런 조건과 환경에서 이렇게 버텼냐고도 물어봤다. 그들이 보기에도 내가 '버티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 나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퇴사하게 됐다. 회사에서는 퇴사를 재고해 보라고 권유했고, 좀 더 좋은 대우를 약속했지만, 이미 어느 정도 업계의 돌아가는 생리를 엿본 나는 지키지 못할 약속이요 면피용 제안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전 직장 자체와 직장 상사에게 악감정이 있는 건 아니다. 일은 재미있었고, 업무적으로도 얻어가는 것도 많았다. 지금은 완전히 다른 직무에서 종사하고 있지만 그 때를 거름 삼아 조금 더 좋은 직장으로 옮길 수 있었다. 그저 내가 영화를 좀 덜 사랑했을 뿐이다, 하고 스스로 생각할 뿐이다.
'잡 & 커리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즈니스 이메일, 잘 쓰는 10가지 방법 (0) | 2022.08.19 |
---|---|
직장인 부업 시작 전 반드시 알아야 할 필수 팁 5가지 (1) | 2022.08.01 |
인사팀 HR 자격증 추천 (HRM 전문가) (0) | 2022.06.29 |
주한 베트남 대사관 서류 인증(공증) 방법 (0) | 2022.06.28 |
영화홍보마케팅 취업 준비 꿀팁 & 방법 (1) | 2022.06.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