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지 데이즈>, <솔로지옥>, <환승연애>, <나는 SOLO>, <잠만 자는 사이> 등 엄청나게 많은 연애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디테일은 조금씩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일반인'들이 출연해 합숙 비슷한 걸 하며 연애 감정을 키워 가는 게 골자다. 처음에는 흔한 흥행 포맷 따라하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더 많은 프로그램이 제작되고,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쯤 되면 공급 과잉이 아니라, 수요에 맞춰 공급한다고 봐도 될 듯 하다. 연애 프로그램 흥행을 단순한 대세를 넘어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이해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대목이다.
반면 20대와 30대 중 연애-결혼하는 사람의 비율은 바닥을 기고 있다. 참 아이러니하다. 연애 프로그램의 흥행 실적을 보면 20대와 30대는 누구보다 핑크빛 연애를 꿈꾸고 또 좋아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현실 세계에서 이들은 연애와는 담을 쌓은 것처럼 보인다. 도대체 왜 이런 기현상이 벌어지는 걸까? 짧은 식견으로 몇 가지 생각을 해 본다.
일단 연애 프로그램 흥행 현상으로 미루어 보아 '20대와 30대는 연애를 좋아한다'라는 전제를 깔아 본다.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연애를 하고 싶다'와 '연애를 좋아한다'는 약간 다를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이 두 가지가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고 이야기를 해 본다. 이렇게 가정하고 나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그럼 도대체 뭐가 이들의 연애를 가로막고 있는 거지?
무엇보다도 삶의 여유가 없다. 돈이 없고, 시간이 없다. 20대와 30대라면 당연할 수도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더 무서운 건 열심히 산다고 해서 미래가 큰 폭으로 좋아질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이들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불과 얼마 전 '벼락 거지'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지금이야 상황이 많이 반전됐다지만 그래도 그 때의 임팩트는 아직 뇌리에 강력히 남아 있다. 노동을 통한 근로 소득의 가치가 바닥에 떨어졌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지라도, 적어도, 이전처럼 많은 걸 희생해서까지 얻어야 하는 건 아니라는 인식이 생겼다.
하지만 근로 소득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났을 때, 그 밖에는 불확실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다시 말해, 불안함의 지배를 받게 된다. 더 부유해 질수도 있지만 반대로 엄청난 리스크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선택은 스스로 해야 하고, 책임도 자기 몫이다. 이 방법이 옳을까, 이 길이 맞을까에 대한 고민을 끝도 없이 해야 한다. 실패의 두려움과 불안함이 쉴 새 없이 엄습해 온다. 아직 근로 소득에 기대어 사는 사람도 이 불안함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상황에서 하루 빨리 탈출해야 하는데, 어떤 방법을 취해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내 앞가림 하기도 바쁘고 어렵고 힘든 세상이 된 거다. 그리고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대체로 그렇다라는 걸 어느 정도는 이해하며 짐작하고 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는 게, 그 사람의 불안함까지 내가 떠안아야 되는 상황이 된 거다. 이전까지 연애-결혼이 안정적인 삶을 향한 여정이었다면 이제는 불안함을 제곱시키는 역할을 하게 됐다고 볼 수 있겠다.
그래서 이들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연애를 '소비'하는 거다. '소유'하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우니 잠깐 그 감정을 빌려서 소비해 버리고 책임 질 일을 애초에 만들지 않는 방법이다. 따라서 지금 유행하는 연애 예능 프로그램은 과거의 것과는 궤를 달리 한다. 과거에는 현실에서 느낄 수 없는 '환상적'인 감정을 전해주느라 바빴다. 그래서 <우리 결혼했어요>처럼 연예인들이 등장하거나, 다른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이라도 연예인들끼리의 커플링이 주를 이뤘다. 지금은 다르다. 오늘날의 연애 예능 프로그램은 지나치게 환상적이어서는 안 된다. 연애 감정을 소비하고자 하는 시청자들의 수요에 맞춰 적당히 '현실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일반인들이 출연한다. 당연히 선남 선녀 위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인이 보여주는 생생한 반응은 보는 이들에게 현실감을 선사하는 데 충분하다.
'시대 속 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헬린이 중간점검 기록 (1) | 2023.09.07 |
---|---|
(쉼터) 욕구가 결여된 삶 (0) | 2023.08.17 |
(교회에서) 남겨진 자 (0) | 2023.08.07 |
신성에서 인간성으로, 교회가 바뀐다 (1) | 2022.1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