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하는 삶

찬양 인도자를 위한 선곡 방법

야너도행복할수있어 2022. 6. 20.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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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필수적인 요소인 만큼, 인도자의 어깨는 무겁습니다.

찬양 인도자들이 100명 있다면 100명 모두 각기 다른 찬양 선곡 방법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방법은 섬기는 교회와 예배가 어떤지에 따라 다를 것이요, 찬양팀 구성원과 회중에 따라서도 한 번 더 달라질 터이다. 그렇지만 방법이 제각각이라고 해서 아무 찬양 선곡 방법이 모두 좋다고는 할 수 없겠다. 찬양을 선곡해 본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선곡이 어떻게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해당 찬양 시간이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지는지가 상당히 많이 결정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를 포함한 거의 대부분의 찬양 인도자들은 찬양 인도에 있어서 선곡이라는 과정에 유달리 많은 주의를 기울이는 것 같다. 그러나 그 방법은 다채로워서 누군가는 말씀 묵상을 통해, 누군가는 깊은 기도를 거쳐 저마다의 방법을 통해 곡을 확정한다.

 

지금부터는 내가 거의 매번 찬양 인도를 준비하며 선곡하는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해 나눠보고자 한다. 내가 찬양 주제 선정부터 실질적인 곡의 선택, 구성까지 어떤 부분에 유의하고 또 중점을 두는지 최대한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게 서술한다. 덜컥 찬양 인도자의 직분을 감당하게 된 분들부터, 인도자의 자리에서 선곡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있으신 분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단, 내가 제시하는 찬양 선곡 방법은 어디까지나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방법에 불과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찬양 선곡에 있어서 정답은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나 역시도 매번 이 모든 과정을 거쳐 선곡하는 게 아니다. 어쩔 때는 갑자기 선곡이 불과 몇 분 만에 휘리릭 끝나기도 한다. 더군다나 개인적으로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방법론을 강조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디테일한 방법론에 과하게 집중하다가 간혹 신앙의 본질을 잃는 경우를 심심치않게 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제시하는 찬양 선곡 방법에 대해서는 '이런 게 있구나'하며 참고에 그치는 것을 권한다. 찬양과 찬양 인도의 본질을 놓치지 않고 지혜와 영성을 다하다 보면 언젠가는 자신만의 찬양 선곡 방법이 생기리라 기대한다. 나 역시 아직 찬양 선곡에 대해 끊이지 않는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

 

교회의 공적인 메시지를 주제로 삼는다.

선곡을 올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찬양 시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찬양 시간은 공적인 예배 시간의 일부다. 설교 시간과 개인의 간증 시간이 엄연히 구분되는 것처럼, 공식 예배의 찬양 선곡과 개인의 취향 중심의 선곡은 달라야 한다. 단지 내가 좋아하는 음악, 내가 개인적으로 은혜 받은 찬양을 성도들과 함께 나누는 데 그치면 안 된다. 설교자가 자신의 신념을 선포하는 게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듯, 찬양 인도자는 개인의 체험보다도 교회의 메시지를 우선하여 전해야 한다. 이를테면, 어떠한 주제를 떠올리는 데 있어서는 개인의 체험이 작용할 수 있겠지만 과연 그 주제가 교회 전체와 함께 나누기에 적절한가에 대해서는 검증과 고민이 필요하다는 거다. 여기서 첫 단추를 잘못 꿰면 아무리 찬양 인도를 잘 준비해도 회중과 인도자 간에 괴리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찬양 인도자는 깊이 몰입해서 찬양하고 있는데, 성도들은 멀뚱해 하고 있는 모습이 연출될 수도 있다.

 

나는 찬양 주제를 정하기 위해 주일 대예배 설교에 먼저 귀를 기울인다. 한 주 한 주 담임 목사님이 어떤 말씀을 전하시는지 주목한다. 그러면서 최근 몇 주간 설교의 흐름이 이러했으니, 다음 주에는 이런 말씀을 하실 수도 있겠구나 하며 그에 맞는 주제를 정한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는 충분한 기도가 필요하다. 또는 최근 설교 메시지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함께 묵상했으면 하는 주제를 정할 때도 있다. 아울러 절기와 교회 주요 행사 역시 찬양 주제 선정에 있어서 고려해야 할 요소 중 하나다.

 

이 외에 특히, 찬양 주제를 정할 때 스스로 경계하고 명심하는 내용이 있는데, 그건 바로 찬양 인도자는 설교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가끔 찬양 인도를 준비하다보면 정말 풍성한 은혜를 받아서 꼭 나누고 싶은 내용들이 많아질 때가 있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찬양 가사와 멘트를 통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괜찮다. 그런데 자칫 잘못하면 한 걸음 차이로 찬양 인도자가 지나치게 장황하면서도 독립적인 메시지를 전하게 된다. 그러면 한 예배에서 찬양 인도자의 과한 멘트, 설교자의 메시지 두 가지의 메시지가 성도들에게 전해지는 셈인데 이는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 내용이 말씀을 전하시는 목사님과 한 흐름이라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오히려 예배에 이질감을 가져다주게 된다. 그러므로 나는 가급적 찬양 주제는 간결하게 함으로써 적어도 설교 메시지와 반대되는 일만은 피하고 있다.

 

주제를 잘 나타낼 수 있는 중심 찬양이 선곡되어야 찬양 시간이 한 흐름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중심 찬양을 선곡한다.

찬양 주제를 선정했다면 중심 찬양을 선곡한다. 여기서 중심 찬양이란 찬양 시간에 함께 고백할 가사들 중 주제를 관통할 수 있는 찬양을 의미한다. 나는 20분간 찬양을 인도하기 때문에 대개 4곡, 많으면 5곡을 선곡하게 된다. 이 때 중심 찬양은 일반적으로 1곡이다. 나는 그 한 곡에 무게를 두고 뼈대에 살을 붙이듯 다른 곡들을 선곡한다. 이후 선곡되는 찬양들은 중심 찬양과 가사적으로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음악적으로 어색함은 없는지 고민하게 된다.

 

찬양의 특성상, 가사의 내용이 함축적이고 간결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중심 찬양 가사에서 이야기하지 못하는 내용들을 담고 있는 찬양들을 주로 앞뒤로 선곡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사랑합니다'라는 가사의 중심 찬양이 있다면 그 앞에는 감사해서 사랑하는지, 감사하기 때문에 기쁨이 샘솟는지 등 부연 설명이 들어가는 식이다. 다른 곡들은 해당 중심 찬양의 핵심 가사를 향하도록 한다. 그렇지 않고 이 찬양 저 찬양 모두 다 저마다의 독자적인 메시지와 방향성을 지닌다면 회중들은 이리 튀고 저리 튀는 찬양 가사 중 어느 장단에 맞춰 집중해야 할지 혼란스러울 수 있다. 나는 어느 성도나 찬양 시간에 어렵지 않게 집중할 수 있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 친절한 선곡 방식을 고민했고 그 결과가 바로 중심 찬양 위주의 선곡이다.

 

순서는 중심 찬양이 먼저 선곡될 수도 있고, 찬양 주제가 먼저 정해질 수도 있다. 때로는 이 두 과정이 한 번에 이뤄질 수도 있다. 그만큼 나의 찬양 선곡 방식에서 중심 찬양과 찬양 주제는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선곡은 회중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

지금은 HR 직무를 맡고 있지만, 전 직장에서는 영화를 홍보마케팅 했다. 마케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타겟을 정확히 아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동용 애니메이션을 20대 남성에게 셀링할 수는 없다. 타겟을 설정하고, 그들의 커뮤니케이션 방법과 언어를 적용하는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전 직장에서 체감할 수 있었다.

 

비슷한 원리가 찬양 선곡에도 적용된다. 나는 30대 초반이다. 평소 유튜브를 통해 다양한 찬양 사역 팀들의 신곡과 주중 예배 영상을 챙겨 본다. 새로이 업데이트되는 요소들은 놓치지 않고 챙기는 편이다. 그렇지만 그 찬양들을 내가 섬기는 예배에서는 거의 시도하지 않는다. 우리 교회 연합 예배는 장년 성도가 주를 이루며, 코로나19 이후로는 대학부, 청년부가 함께 드리기에 전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찬양을 우선순위로 두게 된다. 게다가 개인적으로는 새로운 찬양이라고 꼭 좋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매년 수많은 찬양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어찌됐든 지금까지 계속해서 불러지고 있다면 어떤 측면에서는 충분히 검증 받지 않았나 하는 게 나의 의견이다. 때문에 만들어진 지 조금 오래 됐다고 해도 가사와 멜로디가 합당하다면 주저없이 선곡하는 편이다. 하지만 최근에 나온 곡들을 무작정 외면하는 건 아니다. 다만 장년 성도 분들이 부르기에 어렵지는 않은 리듬과 멜로디 진행인지에 대해서 다소 냉정하게 고려한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회중을 고려해야 한다는 말과 회중의 눈치를 보라는 말은 엄연히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다만 찬양 시간에 인도자가 회중으로부터 고립되는 상황을 피하자는 거다. 나 역시도 때로는 부르기 어려운 곡일지라도 필요하다면 회중들에게 소개하기도 한다.

 

찬양 선곡 은행에 두둑하게 쌓인 곡들을 보면 선곡할 때마다 든든해집니다.

나만의 찬양 선곡 은행을 만들었다.

선곡 풀의 고갈은 많은 찬양 인도자들의 끊이지 않는 고민이다. 많고 많은 찬양들 중, 주제에 걸맞은 찬양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알고는 있지만 알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던 곡들이 정말 많다. 나는 맨 처음 우리 교회 연합 예배 찬양 인도를 맡았을 때 집 한 쪽에 고이 모셔 두었던 '찬미예수 2000'을 십 수년만에 펼쳤다. 1번부터 쭉 보면서 주제에 맞는 옛날 찬양들을 한 곡 한 곡 엄선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너무 비효율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를 위해 나만의 찬양 선곡 은행을 만들었다. 말은 거창하지만 실상은 대단하지 않다. 일상 생활에서 문득 떠오른 찬양 중 나중에 하면 좋을 법한 곡들을 휴대폰 메모장에 기록해 놓는 거다. 이 때, 해당 곡의 원래 키도 함께 적는다. 4/4박자가 아니라 3박자 계열이나 다른 박자일 경우 이 또한 표시한다. 더불어 기존 은행에 있던 찬양과 이어서 할 수 있겠다 싶으면 두 곡 혹은 세 곡씩 붙여 놓는다. 나의 찬양 선곡 은행에는 지금 약 200여 곡이 든든히 담겨 있다.

 

이렇게 하면 찬양 선곡의 막막함이 대폭 줄어든다. 일단 주제와 중심 찬양을 정했으니, 그 다음에는 찬양 선곡 은행에서 그에 걸맞은 곡들을 추려내기만 하면 된다. 키와 박자를 한 눈에 볼 수 있고, 세트로 할 만한 곡들이 묶여 있으니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과정이 수월해진다. 물론 당연히 찬양 선곡 은행만으로 해결이 안 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럴 때면 차선책으로 구글에 들어가서 중심 찬양을 검색한 다음 연관 검색어와 연관 이미지들을 페이지 마지막까지 훑어 본다. 예상 외의 힌트를 이렇게 얻는 경우도 종종 있어서 가능성을 열어 두곤 한다.

 

찬양의 흐름이 끊어지지 않게 한다.

전체적인 찬양의 구성은 주어진 시간 동안 더욱 더 깊이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편이 좋다. 몰입을 깨지 않기 위해서는 찬양 가사와 음악적 요소가 모두 통일감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내가 유독 중시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내가 선곡하는 4곡은 일반적으로 첫 번째 곡에서 마지막 곡까지 끊김 없이 이어진다. 중간에 키가 올라가거나 리듬이 바뀌는 일도 있지만 완전히 한 곡을 마무리하고, 다음 곡으로 넘어가는 일은 지금껏 한 손에 꼽을 정도로 흔치 않다. 

 

먼저, 뒤이어 부를 찬양의 가사는 앞선 찬양의 가사와 직관적으로 이어지게 하는 편이다. 최근 11월 7일에 선곡했던 곡을 예시로 보면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에서 마지막 '빛난 면류관 받아 쓰고서 주와 함께 다스리리'에서 바로 다음 곡 '행군 나팔 소리로'의 '면류관 받으리 저 요단강 건너'로 이어지는 식이다. 이렇게 선곡했을 때의 장점은, 다음 찬양으로 넘어갈 때마다 인도자의 별다른 부연 설명이 필요 없어진다. 그래서 멘트에 소요되는 시간 없이 찬양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또한 회중들이 찬양의 주제와 방향성을 인지하기 쉬워진다. 최소 두 곡 이상의 찬양 가사에서 같은 키워드들이 반복되는 효과를 통해 자연스럽게 주제에 녹아들어 찬양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더 깊은 찬양의 고백과 풍성한 은혜로 이어지는 지름길이 된다.

 

아울러, 찬양은 음악이기 때문에 곡과 곡을 이으려면 음악적 요소들에 대한 고려 역시 필요하다. 여기에는 곡의 키, 리듬, 박자와 같은 기초적인 음악 지식이 활용된다. 동일한 키의 곡일지라도 리듬이 지나치게 달라지면 이어가는 느낌이 들지 않을 때가 있다. 또는 4/4박자로 진행하다가 갑자기 6/8박자 곡으로 넘어갈 때도 혼란스러움을 줄 수 있다. 내가 이렇듯 가사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연속성 있도록 선곡하는 까닭은 앞서 언급했듯 찬양 주제를 명확히 전달하기 위함이요, 더욱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함이다. 개인적으로는 한 곡이 마무리되고 완전히 반주가 멈췄다가 다음 곡으로 넘어갈 때의 단절감이 크게 느껴지기에 이러한 방법을 취하고 있다. 물론 어떤 면에서는 나의 이 방식이 선곡에 있어서 굉장한 족쇄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연속성만 포기해도 자유도 높은 선곡을 완성할 수 있는 경우가 참 많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내가 굳이 어려운 길을 택한 이유는 그만큼 긍정적인 효과를 많이 봤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선곡 과정에서 최소 수십 번 머릿속으로 곡과 곡이 넘어가는 과정을 재생해 본다. 필요하다면 직접 통기타를 들고 반주에 맞춰 노래해 보기도 한다. 유튜브에서 해당 곡들의 여러 버전을 찾아봄은 당연한 일이다. 자기 전에는 눈을 감고 마음 속으로 찬양을 불러 본다. 이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보면 어느새 실마리가 잡힌다. 매 선곡 과정에서 늘 느끼지만 지름길은 없는 것 같다. 선곡이 완료된 후에는 함께 동역 중인 밴드 마스터의 손을 거쳐 비로소 한 세트의 찬양이 완성된다.

 

좋은 찬양 선곡은 회중들에게 '기도하고 싶은 마음'을 선물합니다.

마지막 찬양은 기도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한다.

나는 찬양 시간을 통해 회중 각각이 예배에 대한 기도제목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선곡한다. 찬양 콘서트, 찬양 예배와 같은 특수한 경우가 아닌 이상 찬양 시간은 예배를 구성하는 하나의 부분이다. 당연히 찬양 시간 자체로도 완결성을 갖고 있어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도들이 예배 전체를 온전히 성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대개 찬양 시간의 마무리는 통성 기도다. 그런데 어떤 찬양 시간을 보면 찬양은 다같이 뜨겁게 했는데 그냥 그것으로 끝나버리는 장면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경우, 찬양의 열기가 예배 전반으로 확대되지 못하는 것 같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마지막 찬양의 대개 가사는 회중들이 결단하거나, 고백할 수 있는 내용으로 한다. 내가 최근 선곡한 세 번을 되돌아 봤을 때 마지막 찬양의 가사를 되짚어 보자.

 

'주님 앞에 나 엎드려 주의 음성 기다리니 나를 부르실 때 믿음으로 걸어가리' - 주님을 보게 하소서

'독수리 날개쳐 올라가듯 나 주님과 함께 일어나 걸으리 주의 사랑 안에' - 주께 가오니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주의 십자가 사랑하리 빛난 면류관 받기까지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 - 갈보리 산 위에 

 

모두 하나같이 자연스럽게 하나님 앞에 덧붙여 고백하고 기도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찬양 선곡이 이렇지 않고, 비유적이거나 모호한 가사로 마지막 곡이 끝난다면 회중들은 대개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모른다거나 각자 개인적인 기도를 하기 마련이다. 마지막 곡의 이러한 선곡 기준은 기존에 설정한 주제에 성공적으로 종지부를 찍는 기능을 한다.

 

마치며

이로써 나의 찬양 선곡 과정과 그 기준에 대한 설명은 끝났다. 앞서 당부했듯 이런 선곡 방식도 있구나 하는 개방된 시각으로 바라봐 주시되, 취할 것이 있다면 취해 주시면 될 것 같다. 아울러 상기한 내용은 어디까지나 방법론적인 부분만을 다루기 때문에 찬양 인도자가 지녀야 할 가장 크고 중요한 역량인 영감과 영성에 대해서는 더욱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선곡 후, 실질적인 준비 과정과 실제 찬양 인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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